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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친구들이 있다. 어느 누구가 작은 동리에서 살면 그의 친구들은 적어서 넷, 다섯 명, 혹은 일곱, 여덟 명이 될 수가 있지만, 큰 회사의 사원이 되거나 학교의 학생이 되면 30, 40명이 되고, 80명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애들의 경우, 저희 친구들의 이름들을 다 외는 것이 꽤 어려을 것 같이 보였지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애들이 저희의 이름들을 자꾸 부르고 들으면 이름들이 귀에 익혀져서 저절로 기억이 되었으므로 그 많은 애들의 이름들이 처음에는 부담이 될 듯싶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고 그저 다정하기만 했었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의 수는 열둘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의 이름들을 외우기가 그렇게도 어려워서 쩔쩔매고 있다. 아니 우리가 그들의 이름들을 읽기를 50, 60, 70번과 80번도 더 되었건만 우리가 그것들을 잘 외우지 못해 큰 불안을 느끼기도 하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집사님들 중에는 그 열두 제자 이름들을 잘 외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아마 우리 장로님들 중에서도 그것들을 잘 외지 못하는 분들이 더러 있을 것 같고, 우리 목사님들 중에서도 그것들을 잘 외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어떤 목사님이 자기 교회일로 그 지방 관청직원과 의논할 일이 있어서 그를 찾아가 좀 도와 줄 것을 구했더니 그 직원이 말하기를 목사님이십니까?” 라고 하기에 목사님은 , 그렇습니다.” 라고 했더니 목사님이시면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름들을 외어 보십시오라고 했으므로 목사님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도마, 빌립....’하면서 잘 나갔으나 그 다음에서는 그것이 거기서 끊어지고 마니 그와 그 직원과의 면담도 끊어지고 말았다.(면담 낙제!).


최근 나성중앙교회에서는 새벽마다 안교 교사 강습회로 모이고 있는데 이번 기 안교 교과제목이 누가복음연구이므로 요 얼마 전에는 누가복음 6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의 하나인 여고보의 아들 유다’ (6:16)의 유다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인지 혹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인지를 묻는 질문이 나왔었다.



이때 이 강습회 강의를 맡고 있던 문인정 목사님이 그 질문의 대답을 나에게 맡기셨으므로 나는 곧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형과 동생들이 같이 예수님께 사사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아버지와 아들 부자가 모두 예수님을 섬긴 사람들은 없었으므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이곳 유다의 아버지야고보는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 대답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답이 온전한 대답이 아니라 절반만의 대답이었으므로 온전한 대답이 요구되었는데 그것은 그 질문자가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아니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도 아니면 성경의 어느 야고보인가 하는 것을 계속 물었기 때문이다.


강습회 후 집에 와서 본 교회 성경사전을 보니 누가복음에 있는 야고보예수님의 형제 여고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의 맏형님이며(13:55, 6:3),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12:17) A.D. 49년에 예루살렘에서 모였던 초대교회 총회의 의장으로 수고하였고(15:13), 후에 히브리서 다음에 오는 야고보서를 쓴 초대교회의 대 지도자였던 것이다.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인 친구들의 이름들을 잘 외우나 성경에 나오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이름들은 잘 외우지 못하는 것이 유감인데 우리는 우선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름이라도 잘 외우기 위해 그들의 이름들이라도 써보면 아래와 같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배대의 아들 여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메,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롯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10:2-4).’


이웃들의 이름들이 나에게 가까워지는 것 즉 그들의 지명도가 높아지는 것은 그들이 나에게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우리 바로 옆집에서 살아도 우리와는 별 접촉이 없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다 건너 살아도 정신적인 접촉은 조금도 끊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사람의 지명도를 높이는 데는 그의 재산, 그의 재능과 그의 직업 등 많은 것들이 이것을 도와주고, 또 그의 부모와 가족들의 사회적인 지위들도 이것을 높여주는데 큰 힘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집에서 가만히 집만 지키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나가서 많이 활동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사람이 나쁜 일을 많이 해서 유명해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유명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니 사람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중 믿음을 기르고, 이웃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업을 많이 도움으로써 우리 이름을 하늘 생명책에 올리는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세베대의 아들들, 야고보와 요한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비교 할 때 야고보와 요한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보다 기억하기 쉬운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우선 그것이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 세베데는 부자였다는 것이다. 그가 부자였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것은 그가 어업을 하되 낚싯대나 그물을 가지고 하는 소규모 어업이 아니라 배를 가지고, 일꾼들을 두고 하는 대규모 어업이었으므로 부자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집에는 일들이 많아서 야고보와 요한도 저희 아버지를 많이 도와주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처음 갈릴리 바닷가에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여고보와 요한은 이미 침례 요한의 제자로써 봉사하던 사람들이었으므로 저희들의 신앙 수준과 일반 교육 수준도 절대로 낮지 않았을 것이다 (4:21: 1:19,20; 9:2: 13:3; 14:33).


그러면 다른 야고보의 아버지 알패오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배운 바에 의하면 알패오의 직업은 잘 모르고, 또 그의 아들 야고보도 열두 제자들 중의 하나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같은 야고보라 하지만은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사이의 지명도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한편 베드로와 안드레의 아버지 요나(요한)의 이름에 관해서도 그가 베드로와 안드레의 부친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1:42; 21:15-16). 따라서 그의 사회적 지위는 꽤 낮았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열두 제자 가운데서 수제자가 된 것은 순전히 그 자신의 믿음, 헌신, 열성과 봉사 등이 그의 지명도를 높인데 기인했을 것이고, 그의 동생 안드레의 지명도가 높아진 사실의 이면에는 형의 덕도 본 점도 있었겠지만 아마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 외의 제자들 중 도마에 관하여는 그가 의심이 많은 사람, 아무것도 제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해졌지만 (20:24-25) 한번 그가 봐야 할 것을 본 후의 그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확고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다 잘 아는 것이지만 하여간 오늘날 그의 확고부동한 믿음을 본받기 위해 그들 자신들을 도마(Thomas)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알 수도 없을 정도다. 그리고 빌립에 관해서는 그가 예수님께로 나온 것이 다른 고참들과 같이 일찍 나왔다는 사실 (1:43,44)과 이때 그는 이미 나다나엘을 예수께로 인도하였다는 사실 (1:45-51)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관록은 이미 만만치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도 도마와 같이 잘 믿지 못하는 의심증의 속성이 있었지만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목격하고는 그의 믿음이 100배로 약진했을 것으로 믿어지니 (6:1-14), 그러므로 그의 지명도는 결코 낮을 수가 없었다.


한편 세리 마태에 관해서는 그가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세관에 앉아서 로마 정부를 위해 세금을 걷다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곧 세리의 직업을 사임하고, 예수님을 따랐고 (9:9), 그리고는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잔치에는 전에 같이 세리 일을 보던 동역 친구들을 다 청하여 같이 즐기면서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소개함과 아울러 자기도 새 생애에 들어온 사실을 소개 했을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마태는 이론가가 아니라 실제를 더 앞세우는 행동적인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의 지명도가 오르지 않았겠는가? (9:10).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세리 마태의 아버지는 알패오라고 하니 (2:14 ; 9:9) 알패오의 지명도가 그렇게 쉽게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요, 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그것은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 세 명의 좋은 사도들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바돌로메, 다대오와 가나안 사람 시몬. 그런데 이들의 이름들의 지명도들이 아주 낮은 것들이다. 하여간 이들의 첫째 사람 바돌로메부터 생각하건데 바돌로메는 나다나엘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서 (10:3 ; 1:13 ; 1:45-51 ;21:2) 바돌로메라는 이름은 나다나엘의 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지명도가 아주 낮은 바돌로메보다는 지명도가 훨씬 높은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을 상용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다음 다대오라는 이름은 마태복음 10:4과 막 3:18에 나오지만 누가복음 6:13에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다대오와 예수님의 맏형님 야고보의 아들인 유다는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고, 지명도는 두 사람 보다 높지 않았었다.


끝으로 가나안인 시몬(10:4 ; 3:18 ; 6:15)은 그가 열두제자들 중의 하나로 택함을 받았다는 말 밖에는 기록된 것이 없고 전설에 의하면 그는 북 아프리카에서 일했고, 팔레스타인에서 순교했다는 말이 있지만 그도 다른 사도들과 같이 주님을 위해 순교했다는 지명도를 갖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 공과를 마치면서 우리의 결심은 이들의 고귀한 생애를 본받아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생애를 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님 제자들의 이름을 외우기가 어려울 때는 성경에 나오는 그들의 이름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주 말하고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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