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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교인과 문학활동

미주재림문학10호 발행을 축하하며

 

 

남 대 극

한국 재림문인협회 회장

 

 

 

I. 인사와 축하의 말씀

 

미주 재림문인협회가 매년 발행하는 미주재림문학 금년에 제10호 특집으로 발행하게 된 것을 충심으로 축하합니다. 미주 재림문인협회에 속하여 이역만리 타향에서 이 땅의 고국인 한국과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 대한 이중의 향수를 함께 달래면서 살아가시는 모든 회원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풍성히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귀 협회와 교류 및 협력의 유대를 갖고 있는 한국 재림문인협회의 70여 회원들의 인사와 축하를 전하는 바입니다. 저희 한국 재림문인협회는 금년에 창설 20주년을 맞이하여 10월에 개최할 기념행사를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이란 숫자에는 온전, 충만, 완성이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창조의 걸작품인 인간에게 손가락과 발가락이 열 개씩 있는 것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명이 아홉 개나 열한 개가 아니라 열 개인 것은 그 숫자가 뜻하는 바 때문일 것입니다. 미주재림문학10호를 발행함으로써 미주 재림문인협회가 더욱 견고한 완성의 단계에 오르기를 바라며, 이 문집이 미주 지역 작가들의 망향(望鄕)의 정한(情恨)을 뿜어내는 마당이 되는 것을 넘어서 미주 한국인 기독교 문학에 크게 기여하고, 나아가서는 한국문학이라는 큰 흐름에 있어서도 그 존재를 과시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미주재림문학10호의 발행을 축하하는 이 자리에서 우리 재림교인이 문학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며 재림교인이 할 수 있는 문학활동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한번 곰곰이 짚어보는 것은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재림교인과 문학활동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래의 본론에서는 경어를 쓰지 않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II. 문학재림교인의 금기(禁忌)와 필요(必要)

 

문학(文學)이란 무엇인가? 우선 이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솔직히 말해서 우리 교회 내의 문학에 대한 태도는 지나치게 편협한 데가 있었다. 과거에 상당한 수의 재림신도들은 문학은 곧 이단(異端) 또는 우범(虞犯)”이라는 병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아직도 완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관념은 예언의 신의 권면을 비교적 철저히 따르고자 애쓰는 재림신도들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한편으로는 좋지 않은 문학이 줄 수 있는 해독(害毒)으로부터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문학을 학습하고 필요한 문학적 자질을 함양하는 일을 방해하는 역기능도 하고 있다. 하지만 예언의 신의 말씀에는 청년들이 문학적 소양과 문예의 자질을 가꿔야 한다는 권면을 퍽 자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예언의 신의 서적들을 두루 살펴봄으로써 문학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부터 고치는 일이 필요하다.

문학에 대한 지난날의 우리의 태도는 방대한 문필 활동을 통하여 영감의 기록들을 남긴 엘렌 G. 화잇(Ellen G. White, 1827-1915) 여사가 가졌던 태도와는 매우 두드러진 대조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잇 여사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조화 있게 계발될 수 있기 위하여 영적인 훈련과 마찬가지로 문학적(文學的)인 훈련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문학적인 훈련 없이는 사람이 각종 신뢰받을 수 있는 위치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교육의 기본, 255-226).

 

예술(藝術)과 문학(文學)과 상업(商業)에 관한 지식을 추구하는 일이 좌절되어서는 안 되며… …” (교사와 학생과 부모에게 보내는 권면, 19).

 

참된 교육은 과학적 지식이나 문학적(文學的) 재예(才藝)를 경시하지 않는다.” (교육, 225).

 

화잇 여사가 이와 같이 말한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그가 갖고 있던 문학이라는 말의 개념이 매우 순수하고 기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의 생각 속에 있던 문학”(literature)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문자 그대로 문자나 서적을 이해하고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정의(定義)는 우리말의 사전적 의미와 매우 흡사한 것이다. 이희승(李熙昇) , 민중서관 간행의 국어대사전에는 문학의 일차적인 의미를 글에 대한 학문학예(學藝)”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학에 관한 개념은 필요 이상으로 편협하며 고식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문학 내부에는 각기 다른 영역과 부문들이 있어서, 그 내용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에 있어서 아직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이른바 문학기피증(文學忌避症)이 오히려 안전할 정도로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위협과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허다하다. 그러나 어떤 사물이 아무리 취급하기가 곤란하고 또 잘못 다룰 때에 위험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것을 무작정 외면하기만 한다면 창조적인 두뇌와 이성적인 사고력을 가진 인간에게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용납되지도 않을 것이다.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에 권면한 것처럼, 그것에 관한 수련을 잘 쌓아서 하나님의 사업의 중요한 일익(一翼)을 담당하는 것이 적극적인 재림교인의 태도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건전하게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개념에 입각하여 화잇 여사가 우리에게 준 문학에 대한 많은 교훈들을 살펴보고, 나아가서 우리에게 절실하고 합당한 권면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요긴한 일이다.

 

 

III. 애굽의 재앙 같은 문학

 

앞에서 인용한 몇 구절에서 화잇 여사는 문학의 중요성을 꽤 강조하였다. 그는 수십 권에 달하는 저서들 가운데 적어도 100회 이상 문학에 관한 권면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의 언급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은 훌륭한 문학에 대한 긍정적인 권면보다는 오히려 유해하거나 불건전한 문학에 대한 경계(警戒)와 금령(禁令)이 훨씬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세상에는 보급되기보다는 차라리 소각(燒却)되어야 할 책들이 범람하고 있다.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출판되고 보급되는 선정적(煽情的)인 화제들을 실은 책들은 청년들이 결코 읽지 않는 것이 좋다. 그와 같은 책들 속에는 사단의 매혹이 있다.” (교사와 학생과 부모에게 보내는 권면, 133).

 

또 다른 부류의 문학이 있는데, 이것은 문둥병보다도 더 부정하며 애굽의 재앙들보다도 더 치명적인 것으로서, 이러한 문학에 대하여 우리의 출판사들은 끊임없이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교회증언, 7:166).

 

거짓되고 오염된 문학을 우리의 교육기관으로부터 멀리함으로써 그 사상들이 죄의 씨앗들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 교육의 기본, 388).

 

“[세속적인 서적에] 탐닉함으로 말미암아 선정적 또는 비도덕적인 문학을 읽는 것이, 마치 아편이나 기타 해로운 약들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하나의 습관이 되며, 그 결과 수천 명의 사람들의 마음이 약화되고, 타락되며 또 심지어는 발광하기까지 이르게 된다.” (저술가와 편집자에게 보내는 권면, 134).

 

화잇 여사가 이상과 같은 말씀들을 기록한 이유는 문학이 갖고 있는 지대한 영향력과 그것의 지속성을 고려한 탓이라고 생각된다. 쉽게 말해서, 독서는 식사(食事)와 매우 흡사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음식물을 앞에 놓고, 그것으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할 아무런 의사 없이 순전히 먹어보기 위한 목적으로, 다시 말해서 시식(試食)”을 위하여 그것을 먹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단 우리의 입에 들어가기만 하면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저작(咀嚼)되고 소화(消化)되어 거기서 영양분이 섭취됨으로써 우리의 체력을 돕고 우리의 자신의 일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식사가 우리의 육체와 관련된 것에 반하여, 독서는 정신 또는 영성에 더 밀접히 관련된 점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어떤 책을 읽을 때에, 아무리 건성으로 또는 시험 삼아 읽어보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망막(網膜)에 비친 활자들이 그것들의 의미로 전환되어 일단 우리의 의식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심성에 선이든지 악이든지 영향을 끼치고야 마는 것이다. 좀 극단적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떤 책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읽은 후의 나 자신은 읽기 전의 나 자신과 이미 다른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인간 역사의 종말에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재림교인들이 영적 순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분명해진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통하여 그토록 상세하고도 면밀한 충고와 기별을 말세의 성도들에게 주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시대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올 형형색색의 책들이 발산하는 크고 작은 악감화(惡感化)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예언의 신의 말씀에 나타난 교훈들이 더할 나위 없이 그리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IV. 절실히 요청되는 문학적 자질

 

그러면 우리는 문학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일체의 비종교적인 서적들과 세속적인 작품들을 완전히 멀리하고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예언의 신의 대답은 분명히 그렇다라는 대답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무슨 문제든지 그것을 회피하는 것만이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문제와 대면하여 부딪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때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잇 여사의 권면들을 보다 포괄적으로 고려하면서 비록 세속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저속하지 아니하고 도덕적으로 문란한 내용을 담지 아니한 문학작품들 중에서 그리스도인 생활에 선한 감화를 끼치거나 문학적인 기예(技藝)를 연마하는 일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지도자들의 충고를 참고해 가면서 적절히 취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라도 신중과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한 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90퍼센트가 다 좋다 하더라도 나머지 10퍼센트에 담긴 불량성이 독자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행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성에 관하여 화잇 여사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은 구별된 지위에 오를 수도 있고, 문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고, 그리하여 오만한 우월감으로써 하늘에서 기원된 진리를 거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 194).

 

그러나 또 한편으로 화잇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업은 최고의 인격적 역량을 요구하고 있으며, 문학적인 자질(literary qualifications)을 갖춘 젊은 남녀들이 여러 분야에서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22).

 

장차 문학적인 자질(literary qualifications)을 갖춘 남녀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게 필요될 것이다.” (그리스도교 교육의 기본, 192).

 

참으로 오늘날만큼 문학의 힘이 복음사업에 절실히 요구되던 때는 일찍이 없었으며, 따라서 문학적인 자질을 구비한 역군들이 현재만큼 요긴한 때는 전에 없었다.

오경(五經)의 율법뿐만 아니라 시편 제90편의 그 주옥 같은 시()와 욥기의 원숙한 인생철학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는 문필가(文筆家) 모세가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하나님의 사자로 활동했고, 입만 열면 영감적인 시구(詩句)들이 거침없이 흘러나오던 시인(詩人) 다윗이 우주의 왕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인간의 왕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오늘날의 재림성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뿐만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문학적 역량”(literary attainment)에 있어서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이 고대 바벨론 제국의 학자들보다 뛰어났고(선지자와 왕, 485), 또한 신약 시대에 와서 바울은 심지어 이교 헬라의 예술과 종교와 함께 그들의 문학”(their literature)에 대하여 매우 친숙해 있었던 사실(사도행적, 237) 등은 21세기와 같은 문명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군들은 더욱 더 넓고 깊은 학식과 더불어 문학을 포함한 각종 예술적 재능에 있어서도 탁월한 수준에 달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함축하여 화잇 여사는 기록하기를 재림 청소년들은 생리학적인 교육과 더불어 문학적인 지식”(physiological education as well as literary knowledge)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으며(절제생활, 183), 특히,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신체적인 건강 및 인격(人格)의 고매함과 함께 높은 문학적 자질들(high literary qualifications)”(교육, 278)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V. 문학 중의 문학, 성경

 

성경은 인간이 물려받은 최고의 문학이다. 성경은 역사이기도 하고, 율법이기도 하며, 계시이기도 하고, 예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은 문학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아담이 한 말 가운데서 성경에 기록된 첫 마디는 그가 그의 아내 하와를 보고 말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2:23)는 한 편의 시()이다. 이것은 뛰어난 문학이다. 이와 같은 아담의 시를 위시하여 성경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와 노래가 수록되어 있고,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라멕의 시(4:23-24), 노아의 시(9:25-27), 여호와의 시(25:23), 야곱의 시(27:27-28; 49:2-27), 이삭의 시(27:39-40), 모세의 노래(15:1-18; 32:1-43; 33:2-29), 미리암의 노래(15:21), 발람의 노래(23:7-10 ),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5:2-31), 삼손의 시(15:16), 한나의 기도(삼상 2:1-10), 다윗의 활 노래(삼하 1:19-27), 시편의 시들과 아가(雅歌)의 사랑노래와 예레미야애가의 비가(悲歌) 등은 모두 탁월한 문학작품들이다.

성경의 책들 중에서도 룻기, 에스더, 욥기 등은 매우 아름답게 기록된 전기(傳記) 문학이다. 이른바 문학서라고 일컫는 다섯 권의 책들(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은 동서고금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고전문학이요, 독보적이고 탁월한 문학작품들이다. 성경 기자들은 이러한 문학작품들을 통하여 창조자와 구원자인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속의 경륜을 노래하였으며, 참된 삶의 도리와 가치 있는 인생길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문학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과 최선의 방법을 예시해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 특히 재림교인들이 어떠한 문학활동을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문인으로서 할 수 있는 문학의 내용과 범위도 거의 무한대인 것을 알 수 있다. 성경 기자들은 시만 쓴 것이 아니라 수상과 수필도 썼고, 명상과 인생철학도 썼으며, 전기와 스토리도 많이 썼다. 연가(戀歌)도 썼고, 애가(哀歌)도 썼으며, 역사소설도 썼고, 법문과 연설문과 기도문도 많이 썼다. 다시 말해서, 문학의 거의 모든 장르를 성경 기자들은 이용하였고, 그것들을 통하여 인간에게 유익이 되고 구원을 받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작품들을 남겼다. 그러므로 성경 시대의 성경 기자들이 한 것은 그 이후의 그리스도인들도 할 수 있고, 마지막 시대의 재림교인들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이다.

 

 

VI. 우리 문학의 계발과 보급

 

끝으로, “우리 문학”(our literature)을 생각해보자. 화잇 여사는 선한 사업이 우리 문학의 보급을 통하여 성취되어 가고 있다.”(절제생활, 252)고 말하였다. 여기서 우리 문학이라고 한 것은 쉽게 말해서 재림 문학이다. 예언의 신의 전반적인 말씀에 비추어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재림을 전파하고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는 목적에서 이탈된 어떠한 문학이나 작품도 최고의 가치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것은 기껏해야 차선 또는 범상한 가치를 지니는 것에 불과하다.

화잇 여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우리 문학의 보급은 주께서 그의 교회에게 세상에 전파하라고 위탁하신 빛을 남녀들 앞에 지시하는 하나의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문서전도 봉사, 16).

 

출판물에 의하여 초청과 경고의 기별들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고 주께서 교훈을 주셨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접촉될 수 없는 얼마의 사람들은 우리의 문학으로 말미암아 접촉될 것이다. 현대 진리로써 세상을 비추기 위하여 우리의 서적들과 문서들로부터 밝은 빛줄기들이 비춰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증언, 8:87).

 

이상에서 화잇 여사가 말하는 문학(literature)”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문학(文學)”이 아니라 문서(文書)” 또는 “(문자로 기록된) 서적을 가리킨다. 구원과 경고의 기별이 담긴 문서를 가리켜 문학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용하시는 최선의 방법이 문학 즉 문서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매우 강조하면서 화잇 여사는 그의 책, 저술가와 편집자에게 보내는 권면(Counsels to Writers and Editors)의 맨 마지막 두 장을 우리 문학에 관한 내용을 위해 할애하였다(저술가와 편집자에게 보내는 권면, 167-181 참조: “Illustrating Our Literature”“Literature in the Closing Work”).

재림교인의 문학활동의 한계는 이제 매우 뚜렷해졌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존재이유와 본연의 사명에 입각한 문학활동만이 그 참된 가치를 발휘한다. 결코 안일(安逸)의 궁전(宮殿)에 있는 단꿈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진부한 소설가군(小說家群)”(교육, 227)의 한 사람이 되거나 또 하나의 부패한 이교(異敎)의 우물”(상게서)을 파놓는 사람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겠다. 오직 사람의 영성을 계발하고, 도덕적 표준을 고양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를 심화시키는 문학을 즐길 줄 알고, 권장하기를 좋아하며, 나아가서는 창작할 줄 아는 문학가 또는 문학애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화잇 여사의 다음과 같은 권면은 우리가 문학에 대하여 취하여야 할 태도의 단면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남녀들이여, 그대에게 참된 지식을 주고 전 가족에게 도움이 될 문학을 읽으라. 그리고 확고히 이렇게 말하라. ‘나는 나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봉사하는 일에 나를 단지 부적합하게 만드는 독서를 위하여 귀중한 순간들을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드릴 봉사를 위하여 적합한 자질을 획득하는 일에 나의 시간과 나의 생각들을 바칠 것이다. 나는 천박하고 죄악적인 사물들에 대해서는 나의 눈을 감을 것이다. 나의 귀는 주님의 것이므로, 나는 원수의 미묘한 합리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음성은 하나님의 영의 감화 아래 있지 아니한 어떤 뜻도 결단코 좇지 아니할 것이다. 나의 몸은 성령의 전이므로 나의 존재의 모든 힘은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함에 바칠 것이다.’” (증언보감, 3:104).

 

재림교인들은 모름지기 선지자의 권면을 따라 문학을 창작할 때나 감상할 때를 막론하고 가장 건실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 퇴폐적이거나 선정적인 문학,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현란한 상상력을 선동하여 사람들의 영성을 피폐하게 하는 글은 쓰지도 말고 읽지도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쓰거나 읽는 모든 글이 일률적으로 신앙적인 것이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심성을 순화시키고 지성과 감성을 함양하는 글, 예술적 감각과 문화적 양식을 북돋우어 주는 글, 그리고 자연을 아름답게 묘사하거나 생활의 지혜를 표현하는 글은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서적이고 권장해야 할 문학이다.

이제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문학을 배척하고 멸시하던 시대를 마감하고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잘 선별하고, 유익한 문학은 적극 장려하고 생산하여, 우리 자신도 문학이 주는 축복을 향유하고, 우리의 후손들은 지도자로서 꼭 가져야 할 재능인 문학적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지도해야겠다. 왜냐하면 영감을 받은 선지자가 말씀하기를 장차 문학적인 자질(literary qualifications)을 갖춘 남녀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게 필요될 것”(그리스도교 교육의 기본, 192)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신학박사, 삼육대 명예교수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 재림문인협회 회장

한국 국제문예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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