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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님의 <개념 없음>을 읽고

한동안, 아니 며칠동안 멍하게 지냈습니다.

이토록 아픈 곳을 콕콕 찌르는 책은 근래에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문장문장마다 아프고 괴롭고 슬펐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저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죄와 거짓과 어두운 비밀과 교만이

찔림을 받아 아프고 피가 났습니다.

그러한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회개하게 하고

마침내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문장문장들...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친구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이러한 충고를 받았다면

더욱 부끄럽고 아프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변명하느라 저 자신의 못난 실체를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책을 읽는 가운데 그리고 명상 하는 가운데

조용히 내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느낌을 얻고 싶으시다면 지금 당장 <개념 없음>을 읽으십시오.

나성중앙 교회 도서실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잠 19:6

문자가 아니라 행간에 깊숙이 파묻혀있는 보석을 캐어

그대의 것으로 만드십시오.


직장에서 틈틈히 휴식시간에 읽으며 제 핸드폰에 밑줄 긋기를 했습니다.

A4 용지 7장이 나오더군요.

타이핑 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했습니다 체를 했다 체로 바꾼 점 이해하십시오.

제 마음 깊이 들어온 몇 문장 이곳에 올립니다.

이 책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그대가 되었으면 기쁘겠습니다.



* * * * * * * * * * * * * * * *


우리의 삶의 올바른 태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담기는 그릇이다. 가뭄에 내리는 단비를 아무리 귀하게 모으고자 하여도 대바구니에는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삶에 대한 잘못된 태도는 영혼과 마음에 부어주시는 은혜를 헛되이 잃어버리게 한다.

 

좋은 태도는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열심을 내어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덕이다.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인한 평정한 마음의 상태가 밖으로까지 흘러나와야 사람과의 진정한 화목을 이룰 수 있다.

 

애매히 고난당하는 인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우리의 잘못된 삶의 태도때문에 고통당하고 어려움에 봉착한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라.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 여러분의 삶의 태도는 어떠한가. 모난 돌이 정맞는다고 여러분의 잘못된 삶의 태도가 고난과 시련을 불러온 것은 아닌가.

 

개념없는 인생은 자기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도 비극이다. 그가 달라지지 않는 한 그의 인생은 갈수록 더욱 진창이 될 것이며 주변사람들도 그런 그의 곁에서 힘들어 할 것이다. 더 헝클어지기 전에 더 외로워지기 전에 삶의 태도를 고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위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의무이자 사람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최고의 비책이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서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위로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위로하신다.

 

자기 깨어짐의 태도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살아가는 삶을 비관적인 인생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참된 기쁨은 진정한 슬픔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경험한다.

 

어차피 가보지 않은 모든 길은 모르는 길이고 그에 대한 모든 예상은 그야말로 예상일뿐이다. 미래는 어차피 미지와 두려움 그리고 의외의 난관들과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섞여있는 그야말로 미래이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의미한다면 예상되는 실패와 난관들은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자기를 의지하는 교만을 버리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자네는 왜 우리가 90번이나 실패했다고 생각하나? 우리의 연구는 필라멘트에 적합하지 않은 재료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실험을 90번이나 성공한 것이네. 에디슨

 

교회에 복음성가가 보급되어 열렬하게 찬양 드리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삼위일체부터 시작해서 성부의 영광, 성령 안에 있는 희락, 그리스도인의 삶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움, 인간의 종말, 우주의 미래 등을 골고루 찬양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복음성가를 보면 거의 대부분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다. 하나님의 장엄한 삼위일체적 특성, 창조주로서의 위엄, 그리스도 구속의 위대함과 교회생활의 아름다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 등이 모두 균형을 이루었으면 좋겠는데 한쪽으로만 몰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잘못되었으니 청교도들처럼 악기를 사용하지 말자고 제안하거나 일체의 복음성가는 세속적이니 장중한 찬송가만 부르자고 하는 것은 올바른 대안이 아니다.

 

진취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도 낙관을 발견한다. 부정적인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찾지못하는 것들을 발견한다. 애정은 진취적인 태도를 낳고 진취적인 태도는 창조적인 발상을 끌어낸다. 그래서 진취적인 사람은 날로 유능해지지만 부정적인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태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15:1

 

성찰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색이 필요하다. 이 사색은 감각적인 것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가능하다.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스스로 감시하기 위해서는 관념적인 것들에게도 생각을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성찰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실수도 교훈이 되고 좌절도 약이 되지만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공은 독이 되고 실패는 실패대로 해가 된다.

 

기쁨과 관용의 태도는 마음이 가벼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잘못을 시인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과는 한사람의 인격의 깊이를 보여주는 행동이며 보다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 하는 지혜이다.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잠 20:3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12:16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15:18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통해서 사람을 얻고 얻은 사람들을 통해서 필요한 일들을 감당해나간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칭찬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모든 사람이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이 되라. 만나서 차라도 한잔 하고 싶은 사람 더 많이 알고 싶은 사람 오래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되라.

 

믿지 않는 가족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이지 않은 작은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양보하라. 언제나 손해를 보고 희생하라. 그것이 불신 가족과 평화를 이루며 복음을 전하는 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삶의 태도는 쉽게 분을 내지 않고 진리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양보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그러진 관계들 중 상당부분이 우리가 조금만 더 너그러웠다면 아름답게 이어질 수도 있었을 관계들이다.

 

죽고사는 일이 아닌 작은 일에는 충분히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양보하지 않는 것이 정말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느끼지 않겠는가.

 

평생 길을 양보해야 백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평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마지기를 넘지 않을 것이다. 소학

 

기꺼이 양보하고 베풀어라. 양보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의 아름다운 의무이다.

 

역린지화 용이란 동물은 본성이 착해 길들이기만 하면 그 둥을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온순하지만 목 부근의 거꾸로 자란 한자 길이의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 버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역린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무엇인가 콤플렉스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순린도 있다. 은근히 사람들이 건드려주기를 바라는 부분이 있다.

 

역린을 건드린다는 것은 역으로 호감을 사기위해서는 역린을 감싸주면 된다는 의미도 된다. 자신의 역린을 건드리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없듯 자신의 역린을 감싸주고 옹호해주는 사람에게 반감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

 

사람에게 점수를 따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잃는 것은 한순간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점수를 따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구제가 육체의 자선이라면 용서는 영혼의 자선이다. 우리의 영혼이 다른 영혼을 위해 베푸는 아름다운 나눔이 용서이다. 육체에 베풀어진 자선도 평생 잊지 못하는데 하물며 나의 엄청난 잘못을 용서해줌으로써 나의 영혼을 가책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 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용서는 허물을 눈감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베푸는 용서에는 관계의 회복을 포함한다. 복수의 포기에서 멈추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용서가 아니다. 용서가 사람을 얻는 지혜인 것은 그것이 깨어질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태도인 까닭이다.

 

용서는 다시 한번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그리하여 모두가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 기회는 용서만이 부릴 수 있는 마술이다. 퀴즐러 로스, 인생수업

 

혹 스스로 인덕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어쩌면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박복하게 살아가는지 한탄스러운가. 여러분의 삶의 태도를 진지하게 반성해보라. 다른 사람에게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좀 더 대범했더라면, 좀 더 관대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있지 않을까.

 

바른 신앙은 우리의 존재를 오히려 더 사랑스럽게 변화시킨다. 신앙때문에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신앙을 지키려 노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혜가 부족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미움을 산 것이다. 조금만 더 지혜롭고 성실했다면 하나님은 물론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을텐데 스스로 부족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살다보면 까다로운 사람도 만나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만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하나님께 그렇게 까다롭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을 인내해주셨고 다듬어지지 않는 그 부분까지 포용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환심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신앙의 가치를 양보해서 받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내면에 하나님을 향한 깊고 진실한 사랑, 하나님을 만난 분명한 체험, 단호한 신앙적 결단력들을 두루 갖춘 사람도 실수 한다. 문제는 아직 하나님의 법도와 진리가 그의 삶 깊숙이까지 제대로 스며들지 못한 것이다. 말씀의 은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자신의 삶속에 치열하게 적용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영혼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어도 사람들의 눈에 그것은 결코 한 번에 읽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진리가 우리 맘에 들어와서 녹고 용해되어 우리의 온 삶에 묻어나올 수 있도록 치열하게 그 진리에 자신을 합치하고자 애써야 합니다. 그러한 분투가 있으면 삶에 대한 어떤 명료한 지혜가 생겨납니다.

 

우리는 삶의 태도를 올바르게 해서 하나님께는 더욱 사랑스러워지고 사람들에게는 더욱 존귀하게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후천적으로 낙천주의자가 된 사람들은 대개 인생에서도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들은 별로 즐거워할 일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삶의 상황속에서도 기뻐합니다. 고난이 와도 그속에서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고 소망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받으며 그 은혜를 자신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상대방을 꺾기보다는 자기를 꺾으려합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견해가 선명해야 하지만 아디아포라a diaphra의 문제, 즉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입장을 숙일 줄도 알아야합니다.

 

태산은 아무리 작은 돌이나 흙이라도 받아들임으로써 저처럼 높게 된다. 큰 인물이 되려면 도량을 넓게하여 많은 인물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필요하다.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친구가 없고 외로운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돌린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먼저 편협하고 이기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신이 자기를 따돌리게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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